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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소란역 김현주

유소란역 김현주

 

 

“사토를 죽이고, 나도 기쁘게 죽으리라.”

 

그저 소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평범한 필부(匹婦)였다. 1919년 4월,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구한말, 나라가 어지럽던 시기에 경기도의 시골에서 가난한 소작농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얼굴 한 번도 못 봤던 남자에게 열여섯에 시집을 갔다. 혼인한 지 열흘 만에 남편은 다시 경성의 학교로 돌아갔다. 그런데...나라가 일본에 넘어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남편이 의병에 합류했다는 편지가 날아왔다. 글을 몰랐던 소란은 그 편지조차 읽지 못했다.

 

몇 년 후, 나라가 완전히 일본 땅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남편이 돌아왔다. 돌아온 남편은 마을에 학교를 짓고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딸이 태어났다. 남편은 아이의 이름을 서희라 지었다. 새벽 서(曙)에 바랄 희(希). 빼앗긴 나라에 밝은 새벽이 오길 바란다는 뜻이었다.

 

임금님이 승하한 해, 3월 1일. 마을에서 만세운동이 벌어졌고 남편은 주동자로 끌려갔다. 얼마 후, 일본 군인들이 소란과 서희를 남편이 지은 학교 앞에 꿇어앉혔다. 함께 모의한 자들의 이름을 대라. 아니면 네 딸을 쏴 죽일 것이다. 소란과 눈이 마주쳤지만 남편은 고개를 돌렸다.

 

서희아부지!!

 

소란은 외쳤다. 그 순간 무얼 바랐는지는 잘 모르겠다. 남편이 동지들을 고변하길 원했는지, 아니면 일본인의 겁박이 그냥 말로만 그치길 바랐던 건지.

 

그 순간, 탕!!! 서희가 쓰러졌다.

 

소란은 딸의 유해를 강에 뿌리고 마을을 떠났다. 상해로 건너가 무장 항일단체 구국단(救國團)을 찾아갔고, 그곳에서 총 쏘는 법을 배웠다. 이제 소란은 구국단의 저격수였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그때 서희를 쏘라 명령했던 군인의 이름을 알아냈다. 사토 신이치. 그가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이 되어 조선으로 돌아온다. 소란은 미국인 유필립과 결혼한 중국인으로 위장해 10여 년 만에 조선 땅을 밟는다.

 

서류상의 남편, 유필립. 그가 자신을 어떤 눈으로 보는지 소란은 안다. 언제부터인지도 안다. 다만 아는 체를 하지 않을 뿐이다. 그의 다정함이 문득 사무칠 때가 있고,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잠시 숨이 멎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소란은 죽은 딸의 얼굴을 떠올린다. 딸을 지키지 못한 어미가 무슨 염치로 다시 행복해지려 하는가. 사랑은 살아갈 사람들의 것이다. 소란에게 남은 시간은 사토를 죽일 때까지, 딱 거기까지다. 그러니 필립의 마음은 끝내 모르는 척해야 한다.

 

알아버리면, ...살고 싶어질 수도 있으니까.

 

 

댓글1
  • 따뜻한포메그라네이트A126364
    유소란은 목표가 있어서인지 강한 여자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유소란의 목표는 오로지 사토 신이치 암살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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